심리학

조현병과 조울증, 왜 구분하는가? (크레팰린, 정신의학, 진단체계)

줄수록 양양 2025. 7. 18. 23:30

조현병과 조울증, 왜 구분하는가? (크레팰린, 정신의학, 진단체계)에 관한 사진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조현병(Schizophrenia)과 조울증(Bipolar Disorder)을 별개의 질환으로 구분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개념은 근대 이전까지 명확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질환을 처음으로 구분하고, 정신질환을 진단 가능한 의학적 상태로 정의하려 한 인물이 바로 독일의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팰린(Emil Kraepelin, 1856~1926)입니다. 그는 현대 정신병리학의 체계를 만든 인물로, 오늘날 진단 분류 체계(DSM, ICD 등)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가 조현병과 조울증을 왜, 어떻게 구분했는지 그리고 그 분류가 현대 정신의학에 미친 영향을 살펴봅니다.

정신질환, 하나가 아니었다: 크레팰린의 분류 혁신

19세기 말까지 정신질환은 대부분 '광기', '정신병', '정신착란' 등 포괄적이고 모호한 용어로 불리며 하나의 큰 범주로 묶여 있었습니다. 증상의 다양성이나 경과, 치료 반응을 기준으로 세분화하려는 시도는 매우 부족했습니다. 크레팰린은 정신질환도 신체질환처럼 진단, 분류, 예후를 바탕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그는 수천 명의 환자를 수년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정신질환이 증상의 단순 모음이 아닌 시간에 따른 경과와 회복 가능성에 따라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기존의 ‘정신병’ 범주를 두 가지 주요 질환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로, 나중에 조현병으로 명명됩니다. 둘째는 ‘순환성 정신병(Manic-Depressive Insanity)’으로, 오늘날의 조울증(양극성장애)에 해당합니다.

이 분류는 단지 증상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예후’가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조현병은 만성적이고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조울증은 반복적 발현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구분된 것입니다. 이는 정신질환을 ‘시간적 흐름과 경과’를 중심으로 진단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조현병과 조울증의 구분 기준: 증상보다 경과

크레팰린은 조현병(당시 조발성 치매)을 사고의 해체, 감정의 둔화, 사회적 기능 저하 등의 증상을 가진 만성 진행성 질환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순환적 양상을 보이지만, 발작 사이의 기능이 보존되며 회복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판단을 단순히 환자의 한 시점에서가 아니라, 수년간의 추적 관찰을 통해 얻었습니다. 이처럼 질환의 ‘시간적 양상’과 ‘경과’를 중시한 접근은 오늘날 정신의학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특히 DSM(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 체계에서 ‘삶의 기능’, ‘경과’, ‘재발 빈도’ 등을 주요 진단 기준으로 삼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크레팰린의 접근은 또한 정신질환을 뇌 기반 질환으로 간주하는 생물학적 모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이 도덕적 결함이나 영적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뇌의 이상이라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고, 이것이 이후 신경생물학적 정신의학 발전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진단 체계는 오늘날에도 기본 틀로 활용되지만, 지나치게 경과에만 의존하고, 환자의 내적 경험이나 심리적 요인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현병과 조울증을 구분한 그의 작업은 현대 정신의학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25년 현재, 왜 이 구분이 여전히 중요한가

조현병과 조울증은 증상의 일부분이 겹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 접근, 약물 반응, 예후, 재활 계획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구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의 경우 항정신병 약물이 중심이 되며, 장기적인 관리와 심리사회적 개입이 요구됩니다. 반면 조울증은 기분안정제, 항우울제, 항정신병 약물의 조합이 필요하며, 조증과 우울증 시기의 관리 방식이 크게 다릅니다.

2025년 현재, 유전학과 뇌영상 연구는 이 두 질환이 일부 공통된 위험 요인을 공유하되, 신경생물학적 기전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가진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 장애는 조현병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조울증은 기분 조절 회로의 이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조현병은 초기 증상부터 사회적 기능 저하가 뚜렷한 반면, 조울증 환자는 에피소드 간에는 비교적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진단의 정확성은 치료 성패를 좌우하며, 조기 개입 프로그램에서도 구체적인 질환별 전략이 요구됩니다.

이처럼 크레팰린의 구분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여전히 임상 현장에서 유효한 진단적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론: 크레팰린의 구분은 지금도 살아 있다

에밀 크레팰린은 정신질환을 증상뿐 아니라 경과와 예후를 바탕으로 분류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가 제시한 조현병과 조울증의 구분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약물 치료, 상담 전략, 사회적 개입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모델은 현대적 연구에 따라 보완되고 있지만, “왜 이 두 질환을 구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그의 관찰과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크레팰린의 분류 체계는 현대 임상심리학과 정신의학이 질환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정의해주었으며,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